산협의 기억, 2016
작품 정보
<기획 의도>
2016 평창효석문화제 기획전
‘산협의 기억’을 열며
기억은 지난 것이지만 현재 남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간의 결이 남은 유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억을 들여다보는 일은 과거를 아는 것을 지나 현재의 우리를 아는 일입니다. 그래서 기억은 소중한 자산입니다.
같은 기억을 가진 사람들은 비슷한 감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성은 대상과 교감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감성이 비슷하다면 소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개인과 개인 사이에 적용되는 영역이기도 하고 세대와 세대 사이에 적용되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억은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있습니다. 함께 돌아보며 서로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여기 봉평을 중심으로 평창의 기억을 사진으로 남기는 한 작가가 있습니다. 10여년 동안 발로 기억을 만들어 온 작가입니다. 이 작가가 포착한 장면에는 우리가 잠시 바쁜 마음을 멈추고 들여다보는 산과 개울, 나무와 눈雪이 있습니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삶을 따라가는 작가의 따듯한 눈길이 있습니다.
몇 줄의 시가 그 기억에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언어의 결이 사진의 고운 결을 더 빛나게 하고 있습니다. 그 빛나는 순간을 많은 사람들이 잠깐이라도 만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가산 이효석 선생은 ‘영서의 기억’이라는 산문으로 고향의 기억을 쓰면서 고향을 애틋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고향은 애틋하고 불쌍하고 연민의 대상이 아닙니다. 고향은 우리처럼 아름다운 추억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공간입니다. 이효석 선생님이 살았으면 좋았을 공간입니다.
많은 분들이 오셔서 ‘산협의 기억’을 들여다보시며 잠시라도 고단한 발을 쉬셨으면 좋겠습니다. 효석문화제가 그 쉬는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맑음 마음만 가지고 오시면 좋겠습니다.
2016년 8월 (사)이효석문학선양회
김남극
강원 봉평 생
《유심》신인문학상 수상
시집 『하룻밤 돌배나무 아래서 잤다』(2008), 『너무 멀리 왔다』(2016)
시인의 말
내겐 고향이 없다. 몸은 떠나도 마음은 떠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고향은 떠난 자에게만 있으니 내게 봉평은 늘 실존의 공간이다. 그 공간의 기억은 원형이자 변형의 다른 이름들이다. 변했으되 변하지 않는 것들이 가득한 공간.
다행스럽게도 그 공간의 기억을 현재화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저 몇 줄의 시로 그 기억에 작은 장치를 달 뿐이다. 기억이 더 빛나길 바라면서, 그 기억이 시 몇 줄 때문에 남루해지지는 않을까 걱정하면서.
2016년 여름이 가득한 봉평에서
작가노트
산협의 기억
- 김남돈 -
영동고속도로가 뚫리기 전 봉평은 골이 깊은 산간 오지였다. 백석 시인의 마가리와 같은 봉평에서 나는 나고 자랐다. 메밀꽃이 필 무렵이면 냇가에서 불거지들을 쫒다 어두워져서야 집에 돌아왔고, 밭일을 마친 어머니와 늦은 저녁을 먹었다. 또 비 오는 날이면 어머니와 연기 자욱한 부엌에서 감자와 옥수수를 구워 먹기도 했다. 서리가 내리면 앞산에서 소갈비를 긁었고, 먼산 나무를 리어카로 실어 날랐다. 가마솥에 엿을 고거나 해가 지도록 맷돌에 불은 콩을 갈았고, 화로에 김치와 밥과 문지방에 몰아치는 눈보라를 볶아 먹으며 겨울을 났다. 태기산 너머로 겨울 해는 일찍 졌고, 흥정산의 눈은 쉽게 녹지 않았다.
어린 시절은 궁핍하고 고단하고 추운 시간이었지만 마음속에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은 아마도 나의 근원이 눈과 바람과 산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가리로 통하는 깊고 깊은 산, 산과 함께하는 그 시절 봉평 사람들도 그러했으리라.
어린 시절을 쫓아 평창과 봉평을 서성거린 스무 점의 사진을 부끄럽지만 내보인다. 꺼끌꺼끌한 강냉이 밥 같은, 노모의 손등 같은 산협 풍경 한 그릇 잘 씹어 자시고 가셨으면 좋겠다.
전시이력
2016. 06. 평창효석문화제 기획전시(강원도 평창)
2017. 03. 강릉미술관(강원도 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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